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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강아지 이름만 밝힌 대통령 기자회견
- 박일규
- 조회 : 3852
- 등록일 : 2014-01-09
| 강아지 이름만 밝힌 대통령 기자회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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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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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가장 믿지 못할 것이 방송과 신문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친구인 기자가 말한 ‘요즘 시대’는 30년이 지났지만 마치 지금 언론상황을 말하는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보도를 제대로 못할망정 독재에 비분강개하는 기자가 꽤 있었고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상황에 순종하는 기자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보도된 것은 폭압정치의 틈새를 뚫고 나오려는 기자들의 의기가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들 신문은 지금 거대한 선거비리가 불거졌는데도 축소보도에 급급하는가 하면 대통령 기자회견이라는 기회도 그냥 날려버렸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국민에게 현안을 설명하고 반대자와 소통하는 정치행위인데, 설명도 소통도 없었고 공안통치 말고는 정치도 사라졌다. 나라가 시끄러운 국가기관 선거개입에 대해서는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혼자 입을 다물어버렸다.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종북몰이를 하던 공안사건들과 전연 딴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불법으로 떼쓰면 적당히 받아들이곤 했는데, 이건 소통이 아니다”라며 자신은 현장 방문과 청와대 초청 등으로 소통을 잘해왔다고 말했다. 국민 다수가 공공부문 사영화에 반대하고 야당을 비롯한 상당수 국민은 철도파업도 지지했는데 그들은 졸지에 ‘떼나 쓰는’ 국민과 정당이 되고 말았다.
소통은 원래 반대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도 그것을 수렴한다는 점에서 독재나 공산주의와 다르다. 야당은 영어로 ‘반대당’(Opposition Party)이라 부를 만큼 반대가 존재 목적이다. 선거의 공정성과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공기업의 사영화를 막으려는 노력을 ‘국론분열’이니 ‘소모적 논쟁’이라 말한다면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이니 공무를 맡아서는 안된다. | ||||||
hibongso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