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이 때로 혼선의 근원이 되는 건 아이러니다. 파리의 센 강에 걸린 제일 오래된 다리는 ‘새 다리’다. 영화 <퐁뇌프의 연인들> 배경인 퐁뇌프(Pont-Neuf)는 ‘새(Neuf) 다리(Pont)’란 뜻이니까. 낡고 고색창연한 이 다리도 1607년 준공 당시에는 명실상부한 ‘새 다리’였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엉뚱한 이름이 되고 말았다. 옥스퍼드대학교 38개 칼리지 중에서도 ‘뉴 칼리지(New College)’는 몇 번째로 오래된 칼리지다. ‘새마을’을 뜻하는 신촌(新村)과 ‘새로 설립한 동네’인 신설동(新設洞)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작명이었다.
‘새’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어하는 심리는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신한국당·국민신당처럼 한자말 ‘신(新)’을 즐겨 붙이더니, 어느새 ‘새’라는 순우리말이 대세가 됐다.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새누리당에 이어 새정치연합이 떴으니 새것에 대한 정치권의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여망을 쓸어 담기 위한 작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당명들은 ‘새천년’민주당이 ‘새십년’의 절반밖에 못 갔을 만큼 대개 단명했다. 새로 지은 당명 말고는 사람도 정강·정책도 바뀐 게 거의 없으니 ‘새’라는 수식어를 계속 붙이기 민망했던 걸까?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영국 보수당이 1912년 이래 같은 이름을 쓸 정도로 정당 이름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정당 이름을 자주 바꾸는 것은 책임정치를 기피하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맞물려 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책임져야 할 한나라당도 새누리당으로 ‘신장개업’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