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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만삭에 입시 치른 그녀, ‘수묵 누드’ 개척
- 박일규
- 조회 : 4152
- 등록일 : 2014-02-21
| 만삭에 입시 치른 그녀, ‘수묵 누드’ 개척 | ||||||
| [맑은 바람 밝은 달, 그곳에 산다④] 충주의 크로키 화가 문은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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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한반도의 정정이 점점 불안해지던 1948년, 가는 눈매의 키 작은 소녀가 서울 흑석동 산꼭대기의 ‘남관 미술연구소’문을 두드렸다. 어떻게든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무작정 전차를 타고 시내를 헤매다 도착한 것이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남관(1913~1990) 선생은 그녀를 보며 그저 허허 웃었다. 그날로 선생의 문하생이 된 소녀는 ‘남자들과 내외하느라’ 하루 종일 석고상만 보며 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선을 그렸다.
당시 풍문여고 2학년이었던 소녀의 검고 풍성하던 머릿결은 이제 듬성한 은발로 변했다. 지겨웠던 생활고, 남편과의 이혼과 사별, 국내 미술계의 무관심 속에 오직 그림 하나만 붙잡고 버틴 70여년 세월이었다. 한때 일본과 프랑스 등 해외 평단에서 ‘색채도 굴곡도 없이, 절대적이랄 만큼 선명하게 붓으로 누드를 표현한다’고 주목받았던 소원(小園) 문은희 화백(83).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충북 충주시 동량면의 화실에서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겠다’며 여전히 붓을 잡고 있는 그를 작년 11월 24일 만났다.
애 키우며 미대 공부 했지만 마흔까지 꿈 못 펼쳐
문 화백은 1931년 경기도 김포에서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서울 종로의 옛 화신백화점 근처에서 퍼팅장 형태의 골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명동에서 ‘브라이드홈’이란 예식장을 운영하던 어머니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국악과 그림에 일가견이 있던 아버지는 성악을 전공한 두 여동생이 무대에 서는 것을 반대했지만 문 화백이 그림 공부하는 것은 반겼다. 그러나 딸을 일찍 시집보내던 당시 사회분위기에서 문 화백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은 고 황의철 한양대 교수. 결혼 당시 문 화백은 시댁에 ‘미술대학에 보내줘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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