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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호룡 기자 |
후한(後漢) 말, 북경을 포함한 중국 북동부 유주(幽州) 땅에 북방 유목민들이 수시로 내려와 약탈을 일삼는다. 후한 조정으로부터 유주 통치를 위임받은 호족 공손찬은 북방 유목민족 정벌을 빌미로 백성들을 괴롭힌다.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가 따로 없다. 유목민족의 약탈보다 가혹한 폭정을 더 견디기 힘들다. 공손찬의 수탈과 전쟁에 지친 백성들은 지난날 유주에서 덕치를 펴 존경받던 전 유주자사(幽州刺史) 유우(劉虞)를 그리워한다. 후한 조정에서 유우를 다시 파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목민족인 오환족 왕 구력거는 친교를 선언하고 즉시 군사를 물려 북방 초원으로 돌아간다. 유우는 유목민과 전쟁 대신 교역에 나선다. 유우가 다스렸던 시기 유주는 도적도 없고 메뚜기떼조차 비껴갔다고 할 만큼 태평성대다. 하지만 유우와 호족 공손찬의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야심이 없던 유우는 여러 차례 공손찬을 제거할 기회를 놓친다. 결국 유우는 공손찬의 칼에 목이 날아간다. 기회는 숨을 죽이고 있던 원소가 낚아챈다. 원소가 유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세우자 민심은 물론 유목민족까지 그의 편에 선다. 이 덕에 공손찬을 멸한 원소는 당대 최대 세력으로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