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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지 기자 |
1575년 조선에는 조정의 요직인 이조전랑을 둘러싸고 분파싸움이 일어났다. 싸움의 당사자인 김효원과 심의겸은 각각 서울 동쪽과 서쪽에 살아 이들의 지지자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이 ‘동서분당’으로부터 조선의 파당정치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내세워 이론적으로 싸우기도 했으나 같은 편끼리 싸고도는 의리를 내세워 정국에 피바람을 몰고왔다. 조선 후기에는 당쟁이 더 심해져 붕당 간 싸움이 치열해지고 정적만이 아니라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까지 연루시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결국 혈연·지연·학연에 바탕을 두고 자당의 이익을 지나치게 챙긴 당쟁은 국가와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일제의 손에 나라가 망하면서 조선 당쟁과 세도정치 유산은 청산되지 않은 채 그대로 전수되었다. 그리고 2016년 현재 한국 정치는 여전히 조선시대의 파당 정치에 가깝다. 정당 정치는 서로 장점을 겨루는 정책 경쟁인 반면, 파당 정치는 연고와 인연 중심의 대결 정치다. 파당 정치에서 정당은 ‘정책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정치를 펼치고 그것은 ‘공익’이 아닌 ‘사익’을 추구하는 사이비 정치로 변질된다. 민주주의에서 꼭 필요한 정당의 책임정치는 실종된 채, 뒷골목에서나 들을 법한 ‘의리’와 ‘배신’으로 점철된 파당의 논리로만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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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 8년(1575년)에 이조전랑직을 둘러싼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으로부터 동인과 서인의 파당정치가 시작되었다. ⓒ 드라마 <징비록>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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