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작
세저리 이야기
단비회의에 내린 닭의 은혜.
- 전* *
- 조회 : 3291
- 등록일 : 2015-10-21
오늘 닭이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닭 집에서 영수증을 한 장 받았다. ‘스물 두 마리, 열한박스, 치킨.’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마늘, 고추장, 간장으로 양념된 치킨, 그 맛은 영수증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닭은 세상 모두에게 사랑받는 단백질 공급원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학살되는 가축이다. 매해 지구상에서 오리가 26억마리, 돼지가 13억마리, 소가 4억마리가 도축되는 가운데 닭은 500억 마리 이상이 사람을 위해 죽는다.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와 돼지를 기피하는 이슬람교, 오징어를 기피하는 유대교, 치킨을 신성시하는 한국까지 닭은 종교, 문화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시사현안 중간고사, 봉샘 칼럼 과제를 앞두고 모두의 표정은 어둑어둑했지만, 치킨을 받아들고서는 모두 밝아졌다. 그야말로 호머 심슨(Homer Jay Simpson)이 말한 ‘평화와 치킨’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치킨이 가져다준 평화 속, 전령이 외쳤다. “은혜, 취직했대요.” 7.5기 조은혜, 15분짜리 박달재 다큐를 8개월 동안 편집하면서 남몰래 힘든 눈물을 훔치던 그에게 기회는 왔고, 그는 기회를 잡았다.
세저리 PD반이 개설된 이래 열번째, PD 전용 스튜디오 겸 스터디룸이 준공되자마자 처음으로 배출된 PD인 그는 “앞으로도 더 고생하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표정을 지은 채, 얼굴이 빨개진 그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치킨을 다 먹은 세저리 주민들은 하나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닭목을 비틀어도 마감은 온다. 하지만 주민들의 몸엔 여전히 치킨 냄새가 난다. 닭이 내려준 은혜는 오늘 밤샘의 동력이고, 창의력의 발판이 될 것이니.

세저리 주민 모두가 현장에서 닭다리 한 짝씩 들고 오늘의 추억을 이야기할 날을 기다려본다.
※오늘 닭의 은혜를 내려주신 국제신문 김화영, 안세희, 황윤정 선배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 선배는 며칠 전 부산어묵을 보내와 맛있는 야식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또 익명으로 라면을 주신 선배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누구세요? 당신은?